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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3시 임영일 동구 부구청장과 문화예술회관에서 약속이 있었다. 그는 광주시의 대표적 문화예술 정책통이자 필자의 상사였다. 그는 필자를 신뢰하고 의견을 존중해 줘 정책 실현을 위해 신나게 일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상사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아닐까. 오늘 관람은 시립극단 공연이다. 1982년 창단된 시립극단은 6년 후 해체된다. 광주에 일찍이 극단이 설립된 것은 첫째, 시민들의 예술 사랑정신이고 둘째는 한일합방 직후 국립극단 해산에도 광주는 김창환협률사(1910년), 광주협률사(1912년)가 창단돼 한국 연극발전을 선도했던 역사(광주시사 제2권, 921~927페이지 참조)와 그 맥 때문이었다. 연극계는 시립극단 재 창단을 염원해 왔다. 오랜 노력 끝에 시립극단 재 창단 분위기가 무르익자 극단 창단 정책을 당시 임영일 문화정책관이 맡았고, 필자의 문화예술회관 관장 재임 중인 2012년 5월7일 7번째 시립단체로 활동에 들어갔다. 시립극단 해체 후 24년 만의 쾌거다. 인류 예술사에서 종합무대예술의 중심이 연극인 점을 감안하면 극단 재 창단은 잘된 일이다.

가정사로, 무슨 공연인지 확인도 못하고 시간이 임박해 헐레벌떡 도착했다. 공연은 '연극 정율성' 이었다. 임 부구청장은 동구청 문화경제국 간부 및 직원들과 벌써 와 있었다. 휴무인 토요일 오후 직원들과의 공연 관람 배경은 동구 문화전당 옆에 정율성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정율성 마케팅을 위해 직원들과 같이 왔으리라! 필자도 '정율성!' 하면 소설을 쓰고도 남을 만큼 추억이 많다. 광주시 문화예술진흥 담당사무관 때 그에 대한 연구와 중국과의 교류, 또 그를 둘러싼 갈등 해소를 위해 활동했던 일들이 스쳐간다. 남구에서 시작한 정율성 음악제가 재원의 한계로 광주시가 맡게 된 일, 공연예술재단을 만들어 정율성 음악제 등을 개최하고, 중국 북경, 연안, 상하이 등에서의 공연 개최, 정율성 마케팅과 관련해 중국과 교류 폭을 넓히고자 소림사 무술공연 초청 개최, 정율성 생가 논란을 가리기 위한 고증위원회 운영, 선생의 미망인 정설송 여사가 타계하자 시를 대표해 북경 빈소를 찾아 조문했던 일, 그리고 필자가 마지막으로 중국의 국제 음악도시 하얼빈시 교류공연을 위해 행정부시장을 수행했던 일 등 6~7년간의 일들이 수없이 스쳐간다. 이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중국과 '대박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다. 당시 우리와 정율성 음악제 교류를 한 중국의 유력 국가 단체, 도시들이 정율성 마케팅 제안을 아주 강하게 해 왔다. 정율성 선생은 중국 13억 인구로부터 추앙받은 중국 3대 음악가다. 그 음악(세계)을 새로운 형태로 창작 또는 조명을 해 넓은 중국 시장에서 공연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물론 비용은 공동 부담하는 방식이다. 밑진 장사는 아닐 성 싶었다. 그런데도 혹여 잘못되지 않을까하는 우려 등과 이와 관련해 조직 내 의견조정이 안되고, 공무원의 자리이동, 시 문화행정과 그와 관련한 조직의 개편 등으로 이뤄내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지금, 정율성 음악제가 과거만 못하고 다른 방향인 것 같으며, 또 예전에 닦아온 토대는 말 그대로 옛 노래가 된 듯해 아쉽다.

연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소년 정율성(1914~1976)이 1933년 항일투쟁을 위해 고향 광주를 떠나며 어머니와 이별한다. 정율성은 상해 의열단에서 독립운동과 음악공부를 하며 재능을 인정받는다. 스승은 유학을 권유하나 연안 행을 택한다. 중국 혁명의 성공으로 조선독립을 이루겠다는 목표에서다. 연안에서 노신예술학교를 다나며 '연안송' 작곡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연수요', '팔로군대합창' 등의 작곡 및 정설송(중국 최초의 여성 대사)을 만나 훗날 결혼을 한다. 그는 북한을 거쳐 중국으로 돌아와 북경예술극원, 중앙악단에서 활동하며 많은 창작을 한다. 그는 고향을 떠난 후 줄곧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 노래들을 부른다. 그의 음악에 한국 정서가 배어서 일까! 정치적 탄압과 남조선간첩 죄명으로 고초를 받으며 예술에 대한 고뇌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평생 그리던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 연극은 한 동안 잊고 있던 정율성을 생각하게 하고 이 글을 쓰게 했다. 즉 프레임에 갇혀 있는 우리 공연예술을 정율성을 통해 깨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지금 중국은 경제력으로 하루가 다르게 그 위상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는 너무 가까워 졌다. 한ㆍ중 FTA 체결, 위안화 직접결재, 후강퉁, AIIB 가입 등이 그 가교다. 또 시진핑 주석은 한국 방문에서 정율성은 중국 건국 100대 인물이라며 친밀감을 표시하고 우리를 손짓하고 갔다. 우리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한다. 중국과 공연 직접투자로 예술을 발전시키고, 중국서 돈도 벌고 관광객을 불러들여 일거삼득의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정창재 지역문화예술 평론가ㆍ전 광주문화예술회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