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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부터 그리스 아테네 여행을 계획했다. 2013년 서유럽 7개국 여행 끝에 쓴 '유럽 문화기행(오페라 편)' 마무리를 위해서다. 연초부터 여행에 무진 애를 썼다. 돈이 많다면야 언제든지 황제여행을 떠나면 된다. 여건이 녹록지 않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해 얻은 결론은 자유여행이다. 아테네에서는 한국 민박집에서 묵고, 가이드 조 선생이 나 한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대신 인천에서 아테네까지는 혼자 가야한다. 여행사는 비용을 고려해 러시아 항공을 권했다. 이 항공은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Sheremetyevo, IATA 공항코드 SVO) 공항에서 환승을 한다. 환승은 보안심사를 거쳐 아테네 행 비행기 터미널까지 가야 한다. 인터넷의 여행 경험담은 통일된 얘기가 없다. 각자 처지에서 글을 썼고 SVO 환승 보안심사에 시간이 걸려 애먹었다 한다. 여행사 정보가 약해 인터넷에서 공항을 살폈다. 5개의 터미널에 58개 게이트가 있다. SVO 터미널, 게이트는 단층으로 건립돼 혼란스럽고 게이트를 찾아가는데 안내 표시를 따라 많이 걷는다.

보안심사는 쉽게 끝나고 게이트까지 별 탈 없이 갔다. 문제는 인천공항에서 환승 게이트를 50게이트로 지정해줬다. 헌데 현지에서 바뀌었다. 게이트가 바뀔 수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계속 그곳에 있는 게 화근이다. 전광판 탑승안내 표시가 뜨지 않는다. 애를 태우며 서툰 영어로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티켓을 보더니 모두 맞다 한다. 이웃사촌은 여기서도 유효했다. 중국계 두 아가씨가 서성이는 내게 자기 옆 빈자리를 권한다. 맘 편히 앉을 계제가 아니다. 자초지종을 말했다. 한 아가씨가 자기들 일도 아닌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묻기도 한다. 얼마 뒤 핸드폰 검색 후 나를 48게이트로 데려다 준다. 탑승을 끝내고 문을 닫으려한다. 마음 착한 러시아 개찰원이 탑승을 허한다. 헐레벌떡 자리에 앉자 기장이 곧 이륙을 준비한다. 스튜어디스에게 아테네 행 비행기가 맞느냐 물었다. 그녀는 불안이 가득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두 손으로 안심하라는 사인을 한다. 한 시간 이상 내 마음의 패닉은 어떻게 보상 받을까.

이 비행기를 놓쳤으면 SVO에서 국제 노숙자로서 속 태우며 최소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붉은 저녁노을 속에 멀어져가는 모스크바 땅을 내려다본다. 한때 철의장막으로 궁금했던 모스크바 산과들도 매 한가지로구나! 머릿속 한 곳에서는 이 여행을 다시 끄집어낸다. 고생을 감내하며 여행을 준비해온 이유와 남들은 하찮은 일로 치부 할 줄 모르나 내게는 중요한 과업이다.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다짐 같은 것이 불끈 솟아오른다.

내가 아테네 여행을 준비해온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오페라는 암흑기 중세에 중단된 그리스 연극을 부활시키려는 피렌체 르레상스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장르다. 따라서 인류 공연예술의 시작은 연극부터 이며, 이어지는 공연예술 발전과정(연극 → 오페라 → 뮤지컬 → 오늘날 종합예술)을 스스로 정리해봤다. 이와 관련해 작업 중인 유럽 오페라 기행에 연극의 발상지 그리스(아테네) 얘기를 삽입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둘째는 기원전 6세기에 시작된 그리스 연극(비극)에 대해 인류가 얼마나 혁신(변화)을 가했는지 연구 중인 내 과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 동안 연극이 아테네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리고 광주광역시 문화예술회관 관장 근무를 마치고 세 번째 저서 '공연장에서 문화의 길을 묻다'를 썼다. 거기에 서양 공연예술의 발전과정을 깊게 공부하고 정리를 한바있다. 또 14년간을 준비해온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이 2015년 개관 한다. 이를 기해 혁신적인 공연을 중심가치로 하는 '동시대예술'에 대해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나도 공연의 혁신(변화), 아니 예술의 혁신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다. 소위 아시아예술극장이 혁신적이라 평가하는 개관 기념공연, 시즌작품들과 또 이 시대 최고의 국내외 공연 작품들을 많이 봤다. 그리고 글을 써오고 있다. 십 여회 넘는 내 글의 주제는 공연예술이 내면적으로는 변화가 없었다는 메시지다. 다시 말해 그리스 연극 형태가 외형적으로는 작품별로 기초예술을 융합해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허나 지금도 오페라, 뮤지컬, 종합예술에 그리스 연극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는 게 내 주장이다.

아울러 기초예술이 중요함을 얘기하고 있다. 그리스부터 시작된 기초예술 이론은 인간이 살아가는 필수적인 요소로서 정신세계와 통하는 매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연구가 약하다. 한국이 잘 살게 되었으나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이유도 예술에서 행복을 찾는 사회적 교육체계가 문제임을 지적했다. 앙드레보나르 교수의 "그리스 문명은 바로 우리의 문명이다"에 공감하며 이제 그리스에 왔다. 내일부터 내게 나타날 그 문화가 궁금해진다.


정창재    지역문화예술 평론가ㆍ전 광주문화예술회관 관장